아빠랑 고민/서음운봉

봉개념의 개발(가족과 함께)

닮은소리 2019. 12. 10. 08:46

서음운의 시작은 좋았습니다. 

기존에는 기분에 따라서 노래하고 책을 읽었는데

이제는 계획을 세운대로 집에 도착하면 1번인 노래를하고 서1번인 책을 읽으면서 운1번인 푸샵을 틈틈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남거나 주말에는 서음운의 2번을 했습니다.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저만의 시간표를 만들었던 거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민원이 들어오게 됩니다.  

"요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있다. 이기적이다."라는 앞에 저는 다시 고민하게 됩니다.


며칠 동안 고민을 한 후에 내린 결론은

서음운은 나에 대한 과제를 정한 것이지만 이것을 나혼자만 하니까 주위 사람들과 격리 되는 문제가 있다. 

이걸 함께하면 가장 좋겠지만 최소한 내가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가족들과 공유라도 하자 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봉이라해서 " 주위 사람들을 위한" 이라는 개념을 추가로 도입합니다. 

서음운 뒤에 봉자를 하나 넣어 서음운봉이라고 서음운의 내용을 확장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 당시에 고민했던 것은 서음운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항상 말했던 것이 오빠 혼자만 신났다고하는 거였는데 그말이 맞습니다.

내가 재미있고 즐거워서 하는 것들이라도 가정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그것을 하기 위해서

두가지 전제 되는 것이 있었던 겁니다. 

가장으로서의 의무와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이 가장은 돈벌어주면 의무가 끝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의무에도 내 역할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와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해야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가장이 됐으면 돈은 당연히 벌어야 하는 거고, 퇴근해서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해야하는 의무도 있는 겁니다. 


가족의 동의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내가 집안의 대장인데 무슨동의를 구하냐 할 수 있는데

동의라는 것은 일종의 배려와도 같습니다. 

가족이라고 내 하고 싶은대로 다하고 상대방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공동체는 유지되기 힘듭니다.


가족 구성원 말고 서음운을 하는 본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혼자하는 서음운은 한계가 있습니다.

혼자 읽고 덮는 책은 감동과 지식이 오래가지 않고 제한적입니다. 감동과 지식은 공유되어야 합니다.

혼자 흥얼거리는 음악은 생명이 없습니다. 음악은 사람들과 호흡해야합니다.

운동도 혼자서는 오래 못합니다. 재미도 없구요.

나를 위해 그린 그림 속의 생각도 공유가 되면서 정리가 됩니다.


서음운의 지향점은 나의 만족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향해 있다는 것입니다.

크게보면 나의 생각과 내가 만든 결과물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여 전달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고

작게 생각하면 내 주위의 사람들과 유쾌하게 떠들기 위해서 나는 이런 노력들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봉의 개념을 덧붙여서 서음운을 재 정의 하였습니다. 

서의 최고봉은 책읽기에서 블로그에 글쓰고 강의하기로 바꾸었고

음의 최고봉은 노래하기에서 다른 사람에게 노래 들려주기로 바꾸었습니다.

운의 최고봉은 푸샵에서 아내와 저녁에 동네 한바퀴 돌기로 바꾸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하자면 내가 서음운을 하는데 있어 가족은 짐이 아니라는 겁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을 해서 서음운을 못한다라는 사람이 많은데

제가 이글을 쓰는 목적 중 하나가 그 생각을 바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란 내가 서음운을 하고 싶은데 시간 뺏는 존재가아니라

서음운을 함께 하고 결과물을 공유 할 수 있는 상대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가족이 같이 연주해줄 밴드멤버가 되어 주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의 관객은 되어 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