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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없는 소리" - 스케이트 에스자로 타기

닮은소리 2023. 8. 22. 19:11

 

@ 불편한 생각들


회사에서 보너스가 월급통장이 아닌 상품권으로 나왔을 때
이것을 아내에게 말하지 말까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때
버스에 앉아 있는데 할머니가 타시면 이쪽으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 때 등
삶을 살다 보면 어쩔수 없이 드는 부끄러운 생각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이것보다 더 불편하면서도 솔직한 이야기들을 다룹니다.


@ 현실은 비극과 희극의 중간점


얼마전에 읽은 그 겨울의 일주일이란 책이 추운 겨울이란 시간 속에서 찾아냈던 따스함을 이야기 한 책이었다면
김지연 작가의 마음에 없는 소리는 마음이 먹먹해지는 현실을 담담하게 그린 소설입니다.

각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동성애자, 유부남을 좋아하는 여자, 마흔이 되도록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해 시집이나 갈까 하는 노처녀 등등

보통의 소설과 영화를 보듯히 책을 읽으면서 반전을 기대하지만 작가는 그런 환상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비극으로 끝나는 결말을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주인공이 처해있는 상황을 담담하게 그린 후에 소설을 마무리 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이야기가 갑자기 끝나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됩니다.
작가는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하는 궁금증은 독자의 몫으로 의도적으로 남겨놓는 것 같습니다.



@ 언제까지 미화만 할래?


책속의 등장인물들은 열심히 무언가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학창시절부터 중하위권을 맴돌다가 졸업후 취직이 잘 안되서 여기저기 전전하는
평범하다기보다 그보다 하층에 위치한 사람들의 인생을 보여줍니다.

이런 등장인물이 나오는 경우 기존의 영화나 소설에서는 운좋게 귀인을 만나 인생역전을 한다던지,
아니면 더 나빠진 환경으로 곤두박질 치며서 인생의 밑바닥을 그리다가 비극적으로 끝나던지 둘 중 하나인데
그런 삶의 드라마틱한 변화의 파동없이 일직선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 스케이트 에스자로 타기


서울광장에서 스케이트장을 운영해서 아이들과 자주 갑니다.
저는 운동신경이 좋지 못해서 처음에는 용기만으로 탔는데
자주 기다보니 적응이 조금씩 되더군요.

스케이트는 날이 일자이기 때문에
사람 걷는 것처럼 일직선으로 걸으면 바닥과 날이 닿는 면적이 작기 때문에
미끄러지게 되고 앞으로 나가가지 못합니다.
따라서 옆으로 날을 밀면서 에스자 모양으로 발을 움직여야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굴곡 없이 단조롭기만 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미끄러집니다.
너무 크게 왔다갔다하면 힘든 인생이 되겠지만
적당한 삶의 진동이 있어야 힘을 받아서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 일직선의 인생은 짧아야 의미가 생길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인생의 굴곡이 적습니다.
그러니 인생역전도 없고 비극도 없습니다.
그냥 현재의 자리에서 미끄러지면서 제자리에서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장편소설이 아닌 단편소설이 될수 밖에 없나 봅니다.
장편소설이 된다면 매우 지루한 시간을 견디며 책을 읽어야 합니다.
다행히 작가는 한편에 20분이면 읽을 수 있는 짧은 소설을 여러개 묶어 하나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저도 요즘 짜투리 시간에 책을 읽고 있기 때문에 짧게 끊어지는 호흡의 책과 짧은 시간의 만남이 좋았습니다.